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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경매 No. BDAA2467]
이조판서등 삼조판서등을 역임하였으며 의로운 주장을 하다가 일선의 현감으로 좌천되기도 하였던 尹伋 先生의 간찰 1점
시작가 : 100,000 원
현재가 : 100,000 원
입찰단위 : 1,000 원
결재방법 : 무통장입금
경매기간 : 2020/07/04 23시06분 ~ 2020/07/11 23시06분
남은기간
:
참여제한 : 모두참여
입찰수 : 0 건
판매자 ID : smile8  
물품등록 IP : 121.181.♥.2
판매지역 : 전국
배송방법 : 택배, 판매자부담
문의 및 상담 :
 

1725년(영조 1) 진사시에 합격하고, 그 해 정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. 그런데 이 때 시권()의 비봉(: 시험지 끝에 응시자 본인의 관직·이름·본관·거주지 및 부·조·증조의 관직 이름, 외조의 관직 이름과 본관 등을 다섯 줄로 쓴 뒤, 관원들이 응시자의 이름을 알아볼 수 없도록 그 위를 종이로 붙여 봉한 곳)에 나이와 본관을 쓰지 않아 격식 위배로 탈락하게 되었으나, 헌납 채응복()의 상소로 구제되었다.

1727년 설서가 된 뒤 정언·지평·수찬·교리 등을 차례로 지냈다. 1734년 이조좌랑으로 있을 때 전주권()을 독점해 불법을 자행하는 이조판서 송인명()을 비난하다 파직되었다. 1736년 사간으로 다시 기용된 뒤 집의·검상·부응교 등을 역임하고, 이듬해 교리로서 문과 중시에 병과로 급제하였다.

이후 우부승지·대사간 등을 지내고, 1741년 대사성이 되어 유생의 기강 쇄신과 학풍의 진작에 노력하였다. 그러나 유생들이 사원()의 훼철에 반대해 농성을 벌이자 그 책임으로 이조참의로 체직되었다. 1744년에는 인사 행정의 잘못으로 일신현감()으로 좌천되었다.

1746년 부제학이 되어 동의금부사·한성좌윤을 역임하고, 동지 겸 사은사(使)의 부사로 청나라에 다녀온 뒤 호조참판이 되었다.

1749년 이조판서 정우량()이 당()인 이창수()를 이조참의로 삼으려는 것을 반대하다 홍원현감으로 좌천되었다. 이듬해 다시 부제학으로 기용된 뒤, 예문제학·형조판서·개성유수·예조판서 등을 역임하고 대사헌에 이르렀다. 이 때 문무식년회시()에서 왕의 소패()를 어겨 도배()되었으나 곧 풀려났다.

1763년 참찬이 된 뒤 이조판서가 되었으나, 영의정 신만()의 아들 신광집()의 초사() 문제로 왕의 노여움을 사 파직되었다가 곧 우참찬이 되었다. 이후 이조판서·판의금부사·한성판윤·예조판서·형조판서·좌참찬 등을 역임하고 기로소()에 들어갔다.

준급한 언론으로 영조의 탕평책을 계속 반대, 자주 파직 혹은 좌천되었으나 의로운 주장이 많았기에 곧 서용되곤 하였다. 특히, 글씨에 뛰어나 독특한 서체를 이루었다. 저서로는 『근암집』·『근암연행일기』 등이 있다. 시호는 문정()이다. 

◈ 크기(가로*세로) : 35*27센티

◈ 상태 : 피봉이 배접된 상태이며, 양호합니다.(wing#31)

** 자세한 사항은 아래 사진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. **









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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